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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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서울을 만날 수 있는 청계천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바쁜 일상 속 여유를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습니다. 시원한 물속에 맨발을 담그거나, 주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음악공연에 귀 기울이는 등 청계천을 찾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심 속 여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층빌딩 숲속에서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청계천은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흘러왔을까요.

서울과 함께 변해온 청계천

북악산과 인왕산에서 발원한 청계천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지르는 하천입니다. 조선이 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수도를 옮기며 청계천 주변에는 시전 상가와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고, 하천은 서울 주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후에는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모이며 청계천 판자촌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밀집됨에 따라 청계천 변의 교통과 위생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서울시는 1958년부터 청계천을 덮는 복개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생활 폐수로 더러워진 하천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그 위에 복개도로와 고가도로가 세워졌습니다. 복개된 다리 주변에는 동대문 종합시장과 평화시장, 봉제 공장 등이 들어서며 상권이 형성되고,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자 전기 전자제품 점포들이 밀집한 세운상가도 세워지며 청계천은 근대화와 경제 고성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도심 속 여유를 찾아주는 공간으로

2000년대로 접어들며 낙후된 청계천 복개도로 주변에는 안전 및 환경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해 청계천 물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2003년부터 복원공사가 착수되었습니다. 장마철 이외에는 수량이 적은 청계천의 특징을 고려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흘러내리는 인공하천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9월,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이어지는 5.4km 구간의 하천이 복원되며, 청계천은 풀과 나무가 우거진 도심 속 푸른 산책로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천 주변 또한 다양한 볼거리로 풍성해졌습니다. 인공 폭포와 분수, 정조의 화성 행차를 재현한 최대 규모의 도자 벽화, 60~70년대 청계천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판잣집 테마촌, 각종 문화행사 및 음악 공연이 수시로 열리는 청계광장과 한빛광장 등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던 청계천이 여가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생생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다리

청계천의 또 다른 매력으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이목을 사로잡는 스물두 개의 다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조선 태종때 지어진 다리로 근처 모전(과일을 파는 가게)에서 명칭이 유래된 모전교, 조선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의 무덤돌로 축조된 광통교,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는데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조선 19대 왕 숙종과 장희빈이 처음 만난 곳으로 유명한 수표교, 1970년대 청계천 공장단지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기념하는 전태일다리 등 청계천 산책로에는 조선 시대부터 전해오는 다리와 서울 근현대사의 흔적이 담겨 있는 건축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복원된 청계천은 서울 한복판을 흐르며 더운 날 도심의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벽화와 분수, 공연이나 전시회 등을 제공하며 서울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왔습니다.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 동안 파란만장한 서울의 변화를 품었던 청계천이 앞으로도 문화 공간, 휴식 공간으로서 서울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기대합니다.


글 박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