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친구와 가족을 멀리 떠나, 외딴 곳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질 텐데요. 제주는 예로부터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고, 제주로 유배된 유명한 인물도 많았습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은 태안, 강화도 등 여러 유배지를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제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빛의 바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조선의 왕들 중 처음으로 빛의 바다를 건너 제주 땅을 밟은 광해군 이혼(李琿). 그는 4년간 가시울타리로 집 밖을 둘러 출입을 막는 형벌인 ‘위리안치(圍籬安置)’ 상태에서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살다가 1641년 7월 1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광해군이 눈을 감은 음력 7월 1일 무렵이 되면 제주 지방에는 큰 비가 내릴 때가 많았는데 이를 ‘광해우(光海雨)’라고 합니다.
<김정희 필 세한도>, 1844년, 23.9ⅹ70.4cm, 전체가로 1469.6cm, 축 길이 33.6cm, 축 지름 2.0cm /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는 유배인 중 예술가로 가장 이름 높았던 인물입니다. 추사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었고, 제주에서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척박한 유배생활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했는데요. <세한도>는 역관으로 일하던 제자 이상적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자신을 잊지 않고 진귀한 책들을 구해다 주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아 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른 잣나무와 소나무를 그리고 그 옆에 ‘장무상망(長毋相忘)’, 즉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의 인장을 찍었습니다.
이렇듯 유배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초라한 처지의 자신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학문과 예술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배형은 없어졌지만, 이러한 유배인들의 삶은 우리에게 인생의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지혜와 위안을 줍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요즘, 지인들에게 장무상망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집에서 책과 음악, 그림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 우지원 KF 문화예술사업부 대리